[기념일] 국군의 날: 38선을 돌파한 그날

국군의 날이란?

국군의 날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침략에 맞서 1950년 10월 1일, 국군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1956년, 대한민국은 10월 1일을 공식적으로 ‘국군의 날’로 지정하여 그날의 승리를 기념하고, 국군의 역할과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참조. https://www.narasarang.kr/news/articleView.html?idxno=1686


1950년 10월 1일: 38선 돌파, 통일에 대한 희망의 시작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은 낙동강까지 후퇴하는 위기에 처했으나, 9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다시 반격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국군은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며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부대는 국군 3사단이었습니다. 3사단은 포항과 영덕에서 출발해 강릉과 주문진을 거쳐 38선이 위치한 강원도 양양에 도착했습니다.

국민들은 38선 돌파 소식에 크게 환호하며, 통일에 대한 희망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날의 38선 돌파는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넘어, 국민들에게 통일로 가는 길목을 열어준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유엔의 고민: 38선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국군이 38선에 도달했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한국 전쟁에서 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가진 유엔군사령부는 38선 돌파에 대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엔의 전쟁 목표는 ‘전쟁 이전 상태의 회복’, 즉 38선 이남으로 밀려난 북한군을 다시 그 북쪽으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유엔이 결의한 목표는 38선을 회복하는 것까지였지, 그 선을 넘어 북진하는 것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국군이 38선을 돌파하려면 유엔의 공식 승인이 필요했지만, 이를 기다리는 동안 대한민국 내에서는 38선을 넘는 것이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유엔군사령부는 국제적인 문제와 군사적 책임을 고려하며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38선을 넘다: 국군 3사단의 돌파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9월 29일 서울 탈환식에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38선 돌파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아직 유엔의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를 맡고 있던 정일권 총참모장은 유엔의 승인을 기다리면서도 작전을 계속 진행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결국, 정 총참모장은 미 8군 사령관인 워커에게 북한군의 위협을 이유로 38선을 넘는 작전 허가를 요청했고, 워커는 이를 승인했습니다. 그렇게 1950년 10월 1일, 국군 3사단 23연대 3대대가 최초로 38선을 돌파하는 순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이 북진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이를 기념하여 매년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2024년 국군의 날: 국민과 함께하는 시가행진

올해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국민과 함께하는 시가행진”이 개최됩니다. 이 행사는 국군의 위상을 알리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한 행사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1. 식전행사 (15시~16시)
    민·군 합동 공연을 통해 군과 국민이 하나되는 시간을 가집니다.
  2. 오프닝 (16시~16시 10분)
    국군의장대, 군악대, 전통악대의 합동 공연이 펼쳐지며, 행사 출발 보고와 함께 화려한 시작을 알립니다.
  3. 퍼레이드 (16시 10분~16시 40분)
    호국영웅과 장비/도보부대의 퍼레이드가 이어지며, 국민들이 함께하는 국민행진이 진행됩니다. 이는 국군의 위상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4. 클로징 (16시 40분~17시)
    행사의 마지막은 축하비행과 함께 종료되며, 국군의 강력한 항공전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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